구해줘, 막아줘, 기다려줘… 줘, 줘, 줘!
Write by limousine | Date 2011-01-28 09:46:03 | View 2854 | Download 0

구해줘, 막아줘, 기다려줘… 줘, 줘, 줘!
- 한국 찾은 VIP 주문사항 천태만상


서비스업 불변의 법칙은 ‘손님은 왕이다’다. 이 원칙은 의전에서도 통한다. 몇달 동안 준비한 완벽한 의전 일정도 고객이 싫다고 하면 바꿔야 한다. 특정 브랜드의 음료수만 고집하며 까다롭게 구는 사람, 사사건건 트집 잡는 사람, 안하무인인 사람은 여기에도 있다. 반면 소탈하고 털털한 모습으로 눈부신 배려를 선사하는 이들도 있다. 실수해도 깍듯한 예의를 보여줘 의전담당관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의전업체인 코스모진 정명진 대표, 프리미엄패스 인터내셔널 장동원 부장, 에이티에스에스 함상욱 실장에게 의전손님 천태만상을 물었다. 신라호텔, 더블유(W)호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의전 담당자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국빈급 거물을 접대하고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를 치르며 겪은 에피소드에는 의전컨설턴트들의 애환이 가득하다.


없는 음식은 만들어라 |
나이지리아 국방장관 부부가 왔을 때 일화다. 장관 부인은 한국 음식 중 유독 고소하고 달콤한 ‘꼬마 물고기 반찬’에 반했다. 귀국 직전에야 “구해줄 수 있느냐”며 아쉬워했다. 부인의 표현을 짐작해 추측해보니 멸치볶음이었다. 부랴부랴 대형마트에 달려가 멸치와 관련된 모든 제품을 샀다. 근처 호프집에 들어가서는 직접 멸치볶음도 만들었다. 멸치 선물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은 단돈 5만원. 이후 장관 부인은 “고마웠다”며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비즈니스 일정으로 바빴던 고객이 점심은 간단히 먹겠다며 ‘퀵런치’를 주문했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넣은 도시락을 준비해달란 이야기다. 그러나 어느 정찬보다 까다로운 요구가 따랐다. 샌드위치 재료 중 뭐는 빼고, 뭐는 넣어달라는 복잡한 주문을 했다. 주문형 샌드위치를 만드는 곳이 흔하지 않던 때였다. 결국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 사정해 두 배의 값을 주고 샌드위치를 대령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다이어트 콜라는 외국에서 파는 것과 맛이 다르다. 다이어트 콜라만 마시는 어느 손님을 위해 정식 수입되지도 않는 콜라를 찾아나섰다. 인맥을 총동원해 겨우 미군부대에서 구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건 꿋꿋이 한다 |
싱가포르의 한 건축디자이너가 의전을 부탁했다. 공항에서 나와 그를 데려간 곳은 곡선 디자인이 멋진 에스케이(SK)텔레콤 본사. 건물을 스케치하기 위해 왔다는 그는 건물 외관이 보이는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머문 시간은 무려 10시간이었다. 제이피(JP)모건 쪽 중진이 왔을 때다. 수행원들은 중진의 아이에게 방어벽을 치듯 감싸 안고 다니며 겨우 관광을 마쳤다. 공황장애 탓이었다. 아이는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불안증세가 심해져 갑자기 픽 쓰러지곤 했다. 간호사가 상시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관광을 하고 싶다고 하니 여러 수행원이 감싸 안고서라도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심술쟁이·떼쟁이도 손님이다 |
미국의 도박업계 대부인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의 셸던 애덜슨 회장이 3박4일 일정으로 방문했을 때다. 그는 가는 곳마다 1인 서비스로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식당, 호텔, 공연장 등 그가 가는 곳이면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했다. 최고급 호텔의 최고급 방에서 남이 쓰던 비데를 쓸 수 없다며 교체를 요구했다. 손발이 되어줄 집사를 요구해 직원이 옆방에서 잠도 자지 못하고 그의 시중을 들었다.


잘못된 사전정보… 앗, 나의 실수! |
지금은 야후 최고경영자가 된 캐럴 바츠 전 오토데스크 회장이 방한했을 때다. 사전 정보로 그는 ‘스타벅스 크레이지’였다. 스타벅스를 엄청 좋아한다는 뜻.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행사 이동 때마다 그가 손을 뻗는 곳이면 따뜻한 스타벅스 커피가 있도록 준비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아침에 단 한잔의 커피만 마셨다. 본의 아니게 스타벅스 커피로 물고문을 한 셈이 됐다. 음악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것이란 편견을 깬 건 케니 지였다. 케니 지를 감동시키려고 그의 음악세계와 걸맞은 음악을 차에서 틀었다. 그는 가차 없이 꺼달라고 했다. 쉴 때는 음악을 일체 듣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 호텔 먹고 즐기기 좋아요 |
루이뷔통, 셀린느 등 고급 브랜드를 거느린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미식가이자 소식가다. 그런 그가 방한 때마다 신라호텔을 찾아 먹는 음식이 있다. ‘서양요리의 3대 진미’로 불리는 푸아그라(거위간), 트뤼프(송로버섯), 캐비아(상어알)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가리는 음식이 없는 대식가다. 그가 가장 칭찬한 요리는 비빔밥. 서양인은 매운 고추장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그는 고추장을 많이 넣어 맛있게 비벼 먹었다. 더블유호텔은 외국 팝스타들이 주로 찾는다. 2005년에 이어 지난 11일에도 방한했던 스팅은 특히 스파를 좋아한다. 호텔 스파에서 사용했던 제품도 좋아해 몇 가지를 사갔을 정도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2007년 6월 내한공연을 위해 호텔에 머물면서 특이한 기록을 세웠다. 무대 스태프, 경호팀, 전속 셰프 등 50여명의 스태프 세탁비에만 1000만원을 들였다.


신데렐라가 된 기분은 이런 것? |
트랜스포머 행사 의전에는 30명의 요원이 파견됐다. 모든 의전 요원들에게는 프라다 옷과 신발이 지급됐다. 수백만원대 명품 옷의 사이즈까지 맞춰 입은 의전 요원들은 신이 나서 즐겁게 일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행사가 끝나니 옷을 모두 수거해버렸다. 의전 직원 30명 중 프라다 정장을 건진 건 의전 총괄감독뿐이었다.


못다 한 G20 행사 뒷이야기 |
한국-캐나다 서울회의 때 일이다. 캐나다 빙산으로 만든 ‘버그’라는 특정 브랜드의 물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 병에 자그마치 6만6000원짜리 물이다. 수소문해보니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만 유일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그때 준비하고 남은 물은 사무실 한편에 ‘전시용’으로 뒀다. 의전은 공식이 있지만 때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후임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함께 회의에 배석하기도 했다. 한 나라의 전·후임 두 대통령이 함께 회담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 묵었던 압둘라 귈 터키 대통령은 회교도라는 종교적 이유로 남자 직원만 의전을 담당했다. 빙구 와 무타리카 말라위 대통령 내외는 회담을 마치고 떠나기 전 직접 만든 쿠키와 민속품에 감사 인사를 담은 선물을 남겼다. 행사 내내 집에도 못 가고 의전을 맡았던 직원들은 뜻밖의 선물에 감동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출처 : 한겨레신문